[한겨레]
기후 변화, 작은 섬나라들엔 생존 문제입니다
[인터뷰]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
태평양 적도 날짜변경선 부근에 있는 인구 10만5000여명의 키리바시는 국토 대부분이 평균 해발고도 2m의 작은 산호섬들로 이뤄져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특히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2003년부터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아노테 통(63)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제사회에 2050년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우리라 전망되는 자국의 실상을 알리며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어내려고 애써왔다. 이런 공로 등으로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로 오른 데 이어 지난달 인도의 생물학자인 모다두구 굽타 박사와 함께 선학평화상위원회가 주는 제1회 선학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선학평화상위원회 주선으로 키리바시 현지에서 아노테 통 대통령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15일 키리바시 수도 타라와의 대통령 집무실과 집무실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사저에서 이뤄졌다.
“해수면 상승탓 국민 이주 불가피
불안한 기후난민 전락 원치 않아
교육 통해 ‘존엄한 이주’ 준비중”
“우리에겐 없는 겨울철 나는 한국
더 많은 에너지 사용 이해하지만
기후변화 최전선 희생 생각해주길”
-키리바시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어떤 상황인가요?
“해안 침식 때문에 마을들이 사라지고, 밀려드는 바닷물로 담수 지역이 오염되고, 농작물 생산에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는 적도 주변에 위치해 허리케인 피해가 없었던 곳인데, 올해 3월 바누아투를 강타한 사이클론 팸으로 키리바시의 몇몇 섬에서도 많은 집들이 바다로 쓸려나가는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이런 현상들은 키리바시가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키리바시 정부에서는 계속되는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해수면이 상승하더라도 계속 우리 섬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서 지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사회가 우리의 모든 섬들을 다 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지원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섬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국민들 일부가 이주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키리바시에는 재원이 없어 기후변화 대응의 많은 부분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달려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나서주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 인구가 이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존엄한 이주’라는 정책을 추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존엄한 이주’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시지요.
“나는 우리 국민이 ‘기후 난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격이 내려가는 것이고, 존엄성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더라도 존엄성까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국민들은 새로 들어가는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이 돼야 합니다. 그 사회에 부담을 주고 특별한 배려를 구하는 2등 시민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존엄한 이주’는 우리 국민이 교육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시민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지난해 피지에 약 24㎢의 땅도 구입하셨지요?
“그 땅을 산 것은 미래의 식량 확보를 위한 투자입니다. 종종 ‘그 피지 땅에 국민들을 이주시킬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데,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미래에 누군가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있겠지요. 피지 정부는 필요한 경우 우리 국민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국제사회에 요구해온 인류애입니다.”
-해수면이 상승해도 키리바시에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해결책, 예를 들면 섬을 높이는 것 같은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입니다. 한국 정부에도 기술진을 파견해서 검토한 뒤 해결책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데 문제는 비용입니다. 우리는 동원할 재원이 없습니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와야 합니다. 키리바시의 문제는 매우 긴급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이주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권국가로서 키리바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어떤 형태나 크기로든 국가로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의 땅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국민을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이주한 사람들이 ‘저기가 우리나라다’라며 가리킬 수 있는 땅은 남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바다에 막대한 자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지구의 파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문제는 가장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고 기꺼이 자신들의 복지와 사치를 희생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유엔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현재까지의 협상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국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단 하나의 집을 가진 지구 시민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어떻게 될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 영향을 줄까’ 이런 것들이 불행하게도 많은 토론을 이끌어 왔습니다. 사실 올해 말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회의에서 어떤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 합의되든 그것은 우리의 운명에는 아무 차이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두 배인 국가입니다. 한국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우리와 같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들에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수익과 손실을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점은 이해합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겨울을 나느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을 너무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라와(키리바시)/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