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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의료구호기구 이머전시의 지노 스트라다 대표는 외과의사이기에 앞서 지뢰퇴치운동가이자 반전운동가다. 그는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 의사로 활동할 때 이탈리아제 지뢰 발마라69를 밟아 팔다리를 잃은 어린이를 수없이 수술하면서 “어린이들을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고가 버리는 지뢰는 없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의 반(反)지뢰 캠페인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지뢰 제조를 중단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21세기 슈바이처’ 지노 스트라다 이머전시 대표의사

1990년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최악의 종족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 살육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치료한 푸른 눈의 40대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 그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때 의료팀을 꾸려 카불로 들어갔고 2003년 이라크전쟁 때도 그랬다. 지뢰 폭발로 팔다리를 잃은 아이들과 온몸에 폭탄 파편이 박힌 여성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고 피를 흘리는 적진의 병사들에게도 그는 의술을 베풀었다. 그렇게 내전현장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그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엔 전장에서 살아온 흔적이 훈장처럼 드러나 있고 은회색 머리칼도 성글어졌지만 여전히 민간의료구호단체 이머전시(Emergency)의 대표의사로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미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 보스턴대 명예교수를 만났을 때였다. 진 교수는 “정말 존경할 만한 인도주의자”라며 그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진 교수가 준 이메일로 연락했더니 그는 아프간에 있다며 답신을 보내줬다. 몇 차례의 이메일 끝에 “미국이나 한국을 방문할 때 만나자”고 했는데, 그 약속이 12년 만에 서울에서 이뤄졌다.그사이에 진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선학평화상 수상차 방한한 그를 지난 2월 1일과 3일 두 차례 만나 지난 20여 년에 걸친 내전 피해자 치료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얘기는 진 교수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했다.

 

―오래전 진 교수가 “꼭 만나봐야 할 인물”이라며 소개를 해줬는데, 이제야 성사돼 기쁘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지성이었다. 그와 교유해온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스턴을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당시 진 교수가 ‘초록 앵무새’(국내에서는 ‘나비지뢰’로 번역됨)를 극찬하며 “양심적 지성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말했던 게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책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발간된 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번역됐다.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그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내가 내전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어서 요즘에도 공감을 받고 있는 듯하다.”

 

―‘초록 앵무새’ 이후 책을 더 쓰지는 않았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그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초록 앵무새란 러시아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뿌려놓은 러시아제 대인지뢰 PFM-1형을 말한다. 그는 책에서 “아프간에서는 이것을 초록 앵무새로 부른다”고 기술했다. 소련은 아프간 침공 후 헬리콥터를 이용해 아프간 각지에 수천 개씩 살포했다. 이 지뢰는 10㎝ 남짓한 크기에 한가운데 실린더가 있고 양옆에 날개가 있어 나비처럼 흩날리면서 지상에 떨어진다. 이 지뢰는 밟아도 즉각적으로 폭발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아프간 아이들은 이것을 장난감이라고 생각해 주워 갖고 노는데 날개 부분을 누르면 폭발한다. 이 때문에 초록 앵무새의 희생자는 대부분 어린이다.

 

그는 지난 2월 3일 서울 잠실롯데월드 호텔에서 열린 선학평화상 수상 연설에서도 지뢰 얘기를 하며, 아프간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털어놨다.

 

“아프간에는 지뢰가 조약돌처럼 널려 있고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 어린이들이 무심코 주워 갖고 놀다가 팔다리를 잃고 시력을 잃는다. 내전현장에서 외과의사로 활동해 보니 지뢰는 사람을 겁주고 특히 아동의 미래를 빼앗는 악마 같은 존재다. 지뢰 희생자는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이다. 카불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내전 희생자 중 34%는 어린이다. 26%는 노인, 17%는 비전투 남성, 16%는 여성이다. 전투원은 7%밖에 되지 않는다. 전쟁에 투입되는 총알 10개 중 9개는 민간인에게 향하고 전쟁에서 희생되는 사람의 90%는 민간인이다. 그 희생자 3명 중 1명은 어린이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면 더 안전하다는 역설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희생자의 15%는 민간인, 35%는 군인이었는데 현대는 희생자의 90%가 민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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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내전현장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온 지노 스트라다는 “1960년대 운동권 세대로서 갖고 있는 동시대인에 대한 부채의식과 연대감이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라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내전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활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내가 처음부터 내전현장의 외과의사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내게 특별한 동기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전쟁에서 피해를 당한 시민을 돌보고 싶었을 뿐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소속 외과의사로 1989년 파키스탄, 1990년 아프간, 지부티 등에서 활동했고 1994년 의료구호단체 이머전시를 설립했는데.

“내가 이머전시를 만든 것은 당시 내전이 빈발하면서 희생자들도 늘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ICRC가 그들에 대한 지원과 치료를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워 이머전시를 만들었다. 큰 강물에 물 한 방울 보탠다는 심정으로 1994년 르완다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듬해 이라크 지역 내 쿠르드족 거주지인 쿠르디스탄에서 병원 문을 열었다. 당시 르완다에서는 대량살상이 벌어졌다. 누구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100만 명은 되는 것 같다. 아주 슬픈 이야기다. 당시 국제사회는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유엔조차도?

“물론이다. 너무 늦게, 너무 약하게 개입해 인명피해가 컸다.”

그는 전쟁이나 내전의 피해자가 민간인이고 그중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폈다. 그리고 전쟁을 중지시키고 평화를 진작시켜야 할 유엔,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이율배반적으로 전쟁의 상인이 돼 무기를 팔아먹는 일을 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된 유엔은 세계의 희망이었다. 유엔 헌장에는 ‘세계인들을 전쟁으로부터 구하고 인권을 존중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약소국과 강대국 구분 없이 평등하게 인간을 대한다’는 대목이 있다. 아주 듣기 좋은 얘기인데 이것이 현실에서 실천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분쟁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개입하며 국제평화를 유지해야 하는데 정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유엔이 결성된 후 전 세계는 역설적으로 무기 경쟁에 돌입했고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했다. 1946년 이후 16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전쟁이 발생했는데 이 전쟁에 투입된 무기의 74%는 미·영·프·러·중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만든 것이다. 이게 유엔 안보리의 역설이다.”

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대한 비판은 혹독했다. 5개 상임이사국이 벌이는 이율배반적인 전쟁 비즈니스를 고발할 때 그는 반전운동가와 같았다.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아 팔다리가 잘려나간 여성들, 그리고 지뢰를 밟아 다리가 뭉그러진 어린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엔 분노와 좌절감이 배어 있었다.

―내전현장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반전캠페인을 펴는 이유는.

“전쟁은 해결책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인도주의 전쟁을 얘기하는데 그런 개념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모든 전쟁은 다른 전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전쟁과 테러는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전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을 유혹해 전쟁에 나가도록 하고 있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의사로서 나는 인간의 생명에 관심이 많다. 이머전시는 시민을 치료하는 일과 함께 전쟁하지 말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전쟁은 철폐돼야 하고 유엔은 전쟁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반전운동을 어떻게 펴고 있나.

“전쟁은 반정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자동차 폭발범이나 전쟁 범죄자는 동일하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에게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 할 때 속지 말아야 한다고 시민에게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민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정치인들에게 전달하고,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한 토론을 시작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최근 콜롬비아에서 40년간 지속된 내전이 종식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전쟁에 에너지를 쏟았고 또 희생됐는데 협상으로 내전이 종식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과거 가디언 등과 인터뷰한 것을 보니 이탈리아 국내 정치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던데,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인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간 여러 차례 정계 입문 제안을 받았지만, 한 번도 정치 쪽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 정치에 그리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정치인은 말만 할 뿐 실천을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정치인은 전쟁을 결정하고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싫어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데.

“오성운동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오성운동도 다른 정당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정치인들은 뭘 생산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어떤 당에도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지 않다.”

―유럽 등 전 세계가 난민 문제로 아우성이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이민으로 형성된 나라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저렇게 이민자 문제에 부정적으로 나와 큰 문제다.”

―유럽에서 극우파 운동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데 유럽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유럽의 유로 실험은 실패했다. 유럽연합 형성이라는 이념은 의미가 있지만, 유럽이 연합으로 하나가 되는 실험은 실패했다. 정치적으로도 실패했다. 여전히 유럽연합(EU) 헌법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영국에서 발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럽 사람들은 EU의 구상에 실망하고 있다. 올해 유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도 어디서든 계속 수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EU에서 탈퇴하는 이탈렉시트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가능성이 있다. 내가 얘기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 비극은 아니다. EU가 출범한 뒤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EU 헌법도 만들지 못하고 있고 엄청난 예산만 브뤼셀에서 낭비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인의 지지도 줄어들고 있다. 이탈렉시트가 발생한다고 해서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이머전시를 만들어 활동해온 게 올해로 23년째인데 이머전시의 목표를 설명한다면.

“이머전시를 만든 목표는 전쟁 및 내전 피해자들에게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평화와 안전 인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1만 명의 스태프와 1만 명의 의료자원봉사자들이 내전이 진행 중인 이라크와 리비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응급의료센터(First Aid Post)를 지어 전쟁 피해자들의 재활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내전 지역에는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시설도 충분하지 않아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다. 시에라리온과 아프간 등지에 산모를 위한 의료시설을 만든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탈리아에도 이머전시 의료센터를 세웠는데, 난민들이 이탈리아 곳곳에 많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와 마케라 등 11곳에 난민과 가난한 이탈리아인을 위한 의료센터를 만들었다.”

―6년여째 시리아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데 시리아에서도 활동하는가.

“시리아 내부로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 시리아 난민캠프는 이라크 쪽에 만들어져 있다. 인도주의적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시리아뿐 아니라 이라크와 리비아 등도 인도적 재난상태로 치닫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지역 상태가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이머전시에 요청할 텐데, 그런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나.

“의료활동을 확대하고 싶지만 우리의 재원이나 인력에 한계가 있어 모두 대응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도 미래에는 그곳에 대응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렵다.”

―2014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볼라 위기는 어떻게 넘겼나.

“당시 아주 어렵고 심각한 위기였다. 의료진은 물론 에볼라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환자를 돌보고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내가 평생 겪은 최악의 사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고 도전적인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볼라는 라이베리아에서 주로 발생했는데.

“우리는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퇴치작업을 했는데 라이베리아에서 처음 발병했지만 난민들이 인접국인 시에라리온 쪽으로 넘어와서 그쪽에서 우리가 대응했다. 당시 주요 국가별로 대응지역을 나눠서 했다. 미국은 대개 라이베리아, 영국은 시에라리온, 프랑스는 기니에 집중했다. 한국 정부도 당시 의사와 간호사를 시에라리온에 파견해줘 큰 기여를 했다. 이머전시와도 긴밀하게 협력했다.”

―이머전시 전체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이탈리아에서 기부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지뢰 피해자를 위한 기금이 많이 모였다. 왜냐하면 이탈리아는 주요 지뢰 생산국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지뢰 생산을 하기 때문에 지뢰 피해자를 지원하자는 캠페인도 많았고 그래서 활동비가 지원됐다. 특별하게 펀드레이징 캠페인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이들이 많다.”

―개인이 만든 의료구호단체가 일시적인 동정심으로는 움직일 수 있겠지만 지속성을 갖고 활동하기 위해선 특별한 철학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는 긴급의료구호를 하면서 인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늘 생각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냐, 아니면 부유층의 특권이냐는 물음이다. 우리가 수단 카르툼에 병원을 건립할 때 “무료로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6개국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우리는 “의료는 곧 인권”이라는 신념으로 활동한다. 우리의 노력 덕분에 아프리카 국가들도 호응을 해서 ANM이라는 아프리카 의료협력기구가 생겨났을 정도다. 우리는 우간다에도 병원을 건립 중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원칙에 따라 우리는 모든 이가 똑같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한다.”

―인간으로서 어려운 조건에서 일하는 것은 하루나 한 달, 아니 일 년 정도는 견딜 수 있겠지만 그렇게 30년 가까이 한결같이 내전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힘든 일일 텐데.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가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현장을 지키며 생명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세월이 흐른 것이다.”

―자선 정신으로 무장한 종교인도 아닌데 의사로서 그 어려운 순간들을 어떻게 견뎠나.

“현장에는 정말 많은 환자가 있다. 그러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수술을 하고 치료한다. 힘든 일이지만 의미가 있고 보람도 있다.”

―어떤 보람인가.

“매 순간 그들을 수술하고, 그들이 회복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이머전시와 프랑스의 국경없는의사회와 비교한다면.

“우리는 내전현장에 병원과 의료센터를 만들어 현지에 기반을 두고 치료하는데 국경없는의사들은 긴급상황 시 투입돼 현장형 치료를 중시한다는 게 차이다.”

―한국에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유명한데 이머전시는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이머전시에 관심 있는 이들이 지부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상 연설을 들으면서 내전현장을 지키는 의사라기보다 전쟁터의 철학자, 반전운동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저 외과의사일 뿐이다. 그렇지만, 의사로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을 뿐이다. 의사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모두 자기 일에 골몰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생각해 보기 힘든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많은 영감을 준 연설이었다.

“고맙다.”

―69세인데 여전히 외과의사로서 수술을 하고 있나.

“물론이다. 서울로 오기 전날 밤 수단의 살람 심장외과센터에서 심장수술을 한 뒤 출발했다. 우리는 그 병원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수술을 진행한다.”

―수단에서 살고 있나.

“한 해 몇 개월은 수단에서 살고, 내 고향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몇 개월 지낸다. 수단을 꼭 방문해 달라. 아주 놀랍고 흥미로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은퇴는 언제쯤 할 계획인지.

“글쎄, 언젠가는 해야겠지만, 내가 수술할 힘과 에너지가 있는 한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나는 일하는 것을 즐긴다.”

―과거 인터뷰를 보면 내전현장에서 심장병이 발병했던데.

“이라크에서 발병했다. 발병한 지 10일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와 수술을 했고 성공했다. 완전히 회복했다.”

―골초라고 들었는데 흡연 외에 취미는 무엇인가.

“브리지 게임을 하기 좋아하는데 수단에서는 함께 할 친구들이 없어 못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낚시를 좋아했다. 요즘에는 쉬는 것이 취미다. 평온하게 쉬는 순간을 즐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테레사에 대해 얘기한다면.

“정말 놀라운 여성이었다. 이머전시를 만들 때부터 함께 일했는데, 이렇게 키울 수 있었던 것은 테레사가 위대한 비전을 갖고 운영하면서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이머전시를 관리하고 키웠다. 이제는 딸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서울에 와서 느낀 것은.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루 종일 호텔에 있어서 한국에 대해 별 느낌을 못 받았는데 한국인들은 아주 친절해 좋아한다.”

―한국에 처음 왔다고 했는데 북한에 가본 적이 있나.

“없다. 언젠가 북한에도 가보고 싶다.”

―한국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일을 위해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앞으로도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학평화상 수상기념 연설에서 난민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특별히 강조했는데.

“누구도 난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유럽 등지로 오는 난민들에 대해 우리가 인간적으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백 만 명이 아프간, 파키스탄, 르완다 등지에서 불안정하게 살고 있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세계가 평화로워진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새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난민기구 수장 출신인데,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가.

“그는 난민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고 전임자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인 것 같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인터뷰=이미숙 국제부장 muse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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