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의 꽃? 난 여성 위해 싸우는 '소말리아 전사' 

 

'할례 철폐' 외치는 수퍼모델·인권운동가 와리스 디리

이 여성 앞에서 '고통'이란 단어는 맥을 못 추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은 '두려움'이란 단어도 산산이 부숴버렸다. 소말리아 유목민 출신에서 수퍼모델로, 다시 인권운동가로 거듭난 와리스 디리(Dirie·54). 1990년대 프랑스 샤넬의 얼굴로, 미국 유명 화장품 레브론이 선택한 첫 흑인 독점 모델로, 세계적인 패션쇼 무대를 누비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1997년, 다섯살에 받은 '할례(여성 성기 절제)'의 폭력성을 고백하며 국제사회에 할례 철폐를 전면에 부각시킨 주인공이다. 그러나 7일 서울에서 만난 그녀는 뜻밖에도 "삶은 축복"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내가 고통 없이 숨 쉬고 있는 매 순간을 사랑해요. 아침에 일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건강한 나 자신을 볼 때의 희열이란! 그 어떤 차별도, 불평도 없이 나의 마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이토록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성이 제대로 된 권리를 얻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와리스 디리가 7일 어깨에 두른 스카프를 접더니 마치 여전사처럼 머리에 두르며 외쳤다. “잔인함을 멈춰라! 긍정적으로 살아라(Stay positive)”. 디리는 오는 9일 선학평화상을 수상한다. 작은 사진은 1990년대 샤넬 향수 모델이었던 와리스 디리. 

“여성이 제대로 된 권리를 얻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와리스 디리가 7일 어깨에 두른 스카프를 접더니 마치 여전사처럼 머리에 두르며 외쳤다. “잔인함을 멈춰라! 긍정적으로 살아라(Stay positive)”. 디리는 오는 9일 선학평화상을 수상한다. 작은 사진은 1990년대 샤넬 향수 모델이었던 와리스 디리. /박상훈 기자·warisdirie.wordpress.com

                  

한국이 첫 방문인 디리가 여러 번 강조한 단어는 '감사(gratitude)'였다. 와리스는 소말리아어로 '사막의 꽃'이라는 뜻. 그러나 이름과 달리 그녀는 생살을 찢고 꿰매며 거의 고문이나 다름없는 할례로 수십 년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사촌 언니와 친언니는 할례 뒤 과다 출혈과 합병증으로 결국 사망했다. 열두 살 땐 '결혼 자금'이란 명목으로 낙타 다섯 마리에 자신을 60대 노인에게 팔아버린 아버지를 피해 맨발로 집을 뛰쳐나왔다.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빌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어느 날 눈을 뜨니 환한 햇살이 저를 반기더군요. 언젠간 우리가 겪은 모든 순간을 낱낱이 고발해야겠다는 소명을 느꼈어요. 세상에 널리 퍼질 충분한 힘을 가졌을 때 '폭발시키겠다' 마음먹었지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온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잊고 싶은 순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고통이었지만 디리는 "난 이게 과연 될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될까 같은 건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에'라는 것에 사로잡히는 순간 실행에 옮기기 어려워지니까요. 두려우면 지는 겁니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그녀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은 "두통 때문에 일 못하겠어" 따위의 불평이었단다. 약 하나 없이 뼈가 부러지면 부러진 대로, 너덜너덜해진 상처를 달고 다니는 게 소말리아의 일상이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인생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은 가십에만 빠져들며 자신을 갉아먹지요." 


와리스 디리를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그해 마침 소말리아 대사로 런던에 부임한 이모부의 가정부로 런던 땅을 밟았다. 돈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 청소를 하다 우연히 버킹엄 궁전의 사진작가 테렌스 도노반의 눈에 띄어 모델계에 입문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 '사막의 꽃'(1997)은 1100만부 넘게 팔렸고, 동명의 영화(2009)는 전 세계 56국에 상영됐다. 2002년 '사막의 꽃' 재단을 만들어 아프리카 여성 구호에 힘쓰고, 파리·베를린·암스테르담·스톡홀름 등에 '사막의 꽃' 센터를 설립해 할례 여성을 치료해왔다.

2004년엔 '여성 세계상', 2005년엔 가톨릭 인권운동본부의 '오스카 로메로 주교상', 2007년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UN인권 특별대사로도 활동했다. 얼마 전부터는 아동 문맹률 낮추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엔 시에라리온에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신데렐라, 그게 뭐죠? 제가 신발은 자주 잃어버립니다만, 하하! 왕자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누군가 해결해주겠지 기다리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세요. 저는 그 누구도 아닌 모델이자 전 세계 여성을 위해 싸우는 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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