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선학평화상 받은 수퍼모델 와리스 디리

“할례는 미투보다 절박한 일 매일 수천 명 아동이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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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들쭉날쭉한 면도날에는 피가 말라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여인은 면도날에 침을 뱉더니 옷에 닦았다. 여인이 면도날을 닦는 동안 엄마는 스카프로 내 눈을 가렸고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리고 곧 내 살이, 내 성기가 잘려가는 것을 느꼈다.” (와리스 디리 저서 ‘사막의 꽃’ 중)


   
   소말리아 태생의 여성 와리스 디리(54)는 열두 살 때 60대 노인과 결혼할 뻔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낙타 다섯 마리를 받고 노인과 강제로 결혼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노인과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디리는 집을 탈출했다. 사막을 건너고 길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할 뻔한 위기를 수차례 넘긴 끝에 영국 런던에 소말리아 대사로 부임해 있던 이모부 집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런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 그녀를 본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로 발탁됐다.
   

   이후 디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모델이자 배우로 성장했다. 007시리즈 본드걸 역을 맡는 등 인기를 끌던 디리는 1997년 과거 자신이 당했던 할례 경험을 고백하면서 인권운동가라는 또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할례는 아프리카 지역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성인식으로 여성 성기 일부를 잘라내는 폭력적 관습이다. 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여성의 다리 사이에 ‘나쁜 것’이 있으므로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할례는 여성이 결혼하기 전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를 막기 위해 자행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결혼할 때 여자의 집안이 남자로부터 가축 등의 ‘결혼 자금’을 받는데, 성경험이 없는 여성이어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살 때 할례를 받은 디리는 그때의 충격과 고통을 평생 잊지 못했다. 그녀의 친언니는 할례 이후 사망하기도 했다.
   

   디리는 저서 ‘사막의 꽃’에서 할례라는 폭력에 대해 이렇게 썼다. “소말리아를 누비면서 많은 가족을 만나 그 딸들과 놀곤 했다. 그러나 다시 만나면 딸들이 보이지 않기가 일쑤였다.… 성기 훼손으로 인해 죽은 것이다. 출혈과다나 쇼크, 감염 또는 파상풍으로 인해. 할례가 행해지는 그 열악한 조건을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현재 아프리카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세계를 누비고 있는 와리스 디리를 지난 2월 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디리는 아프리카 농업 혁신에 앞장서 식량안보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 아킨우미 아데시나 박사(아프리카개발은행 총재)와 함께 제3회 선학평화상(위원장 홍일식) 공동수상자로 선정돼 생애 처음 한국을 찾았다. 2015년 한학자 총재가 제정한 선학평화상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기후 위기 문제 해결에 앞장선 아노테 통 전 키리바시 대통령(1회), 아프간 난민촌에 학교를 짓고 교사 양성에 힘쓴 사키나 야쿠비 박사(2회) 등이 수상한 바 있다.
   
   - ‘할례’에 대해 생소해하는 한국인이 많다.

 

 “할례는 한마디로 아동학대다. 아프리카에서는 전통이나 문화라고 부르지만, 어린 소녀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하는 폭력일 뿐이다. 단지 오랜 믿음과 관습이라는 이유로 지금도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는 하루 수천 명의 여성이 할례를 당하고 있다.”
   
   

- 할례를 없애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교육이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 바꾸고 개선해내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설립한 ‘사막의 꽃’ 재단이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활동도 아프리카에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할례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결국 경제적 문제다. 가난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래야 할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디리는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사막의 꽃’ 재단을 설립한 이후 할례 금지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그의 노력 덕분에 2003년 아프리카연합 소속 15개 국가에서 여성 할례 금지를 명시한 ‘마푸토 의정서’가 비준됐다. 2012년에는 유엔의 여성 할례 전면 금지 결의안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13년에는 120명의 의료진과 함께 파리, 베를린 등에 ‘사막의 꽃 센터’를 설립해 할례 여성들의 성기 재건 수술, 직업훈련,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운동’이 한국에서도 이어졌고, 페미니즘은 몇 년째 세계적인 화두다. 이런 움직임들이 아프리카 여성 인권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나.

“할례는 미투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내용 중 하나라고 본다. 여성 인권 신장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할례는 두세 살 된 소녀의 성기가 잘려나가는 일이다. 훨씬 절박하고 끔찍한 일이다. ‘긍정적인 영향’이라…. 미투운동 중에 할례에 관한 내용이 있었나. 그 아이들을 위해 나서서 싸운 사람이 있나. 나는 본 적이 없다.”
   


   - 아프리카 인권운동이나 기아퇴치운동은 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계속 진행해왔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선진사회라는 유럽에서도 끔찍한 아동학대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데, 아프리카라고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나. 어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에 대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 어디에서든 아이들은 여전히 학대를 당하고 있고 그들을 방치하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지역과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당장 눈앞에서 학대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 문제에 눈을 감고 입을 막으며 무시한다. 이 ‘미친 짓’을 관두지 않는 한, 전 세계의 어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사랑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웃음) 아프리카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더 많이 짓고 나아가 전 세계에도 학교를 짓고 싶다. ‘사막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폭력과 억압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디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부당한 폭력과 학대에 대해 말할 때 그녀는 책상을 내려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문명적인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전사(戰士)처럼 보였다.

[기사링크: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545100016&ctcd=C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