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지배 위해 성기 절제…해마다 300만 명 위험
-‘할례 첫 공론화’ 와리스 디리, 제3회 선학평화상 수상자
-“세상을 바꿔놓지 않으면 어디서든 계속될 것”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신보경 PD] “성기가 잘려나갈 때 여자들은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고,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소말리아를 뛰쳐나왔습니다. 도저히 그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싸우기 시작했죠.”
유목민, 가정부, 노숙인, 슈퍼모델, 영화배우, 여성 인권운동가.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와리스 디리(54)는 고향과 영국, 미국 등을 오가며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식은 여성 할례 철폐 운동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1997년 디리가 처음으로 할례의 고통을 고백한 뒤 국제 사회는 잔인하고 질긴 관습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3회 선학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태어나 처음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7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여성 할례를 할 때 사용되는 면도날. 대부분 마취, 소독 등 과정 없이 시술을 하기 때문에 감염과 합병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사진=유엔인구기금]
①성기의 음핵을 제거한다. ②음핵과 음순을 함께 제거한다. ③음순을 자르고 작은 구멍만 남긴 채 성기 전체를 꿰맨다. ④성기를 뚫거나 긁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손상시킨다. 글자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이 문장들은 여성 할례를 하는 네 가지 방법이다. 여성 할례, 보다 정확한 용어로 여성 성기 절제술(FGM·Female Genital Mutilation)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30개국에서 수천 년간 이어진 관습이다. 시술을 하는 집시 여인들은 더러운 흙바닥이나 바위에서 여러 번 쓴 면도날, 바늘, 아카시아 나무 가시 등을 사용한다. 그리고 마취도 없이 15살 이하 어린 아이들의 가장 연약한 살을 잘라낸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과 과다 출혈, 감염, 정신적 충격에 시달린다. 심한 경우엔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는다. 디리도 그렇게 언니 두 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여성 할례는 문화가 아닙니다. 성폭력이자 아동학대일 뿐이에요.” 5살에 할례를 당한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디리는 힘주어 말했다. 여성 할례를 옹호하는 이들이나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슬람교의 의식이자 아프리카의 전통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코란을 비롯한 어떤 성서에도 여성의 성기를 망가뜨려야 한다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근거 없는 믿음 때문에 지금까지 2억 명 넘는 아이들이 고통 받았다. 그 고통은 2019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토록 잔인한 여성 할례는 왜 그리 오랜 시간 이뤄졌고 계속되는 걸까? 디리는 여성 할례의 목적은 “여성의 성욕과 몸을 억압하고, 근본적으로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관습을 유지시키는 원인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성차별주의라는 것이다.
‘여성의 성기는 더럽다. 여성 할례를 통해 순결을 증명할 수 있다. 할례를 통해 성욕을 억제시켜야 여성이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
여성 할례를 행하는 문화권에서는 이 같은 인식이 넓고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은 결혼하기 어렵다. 이 지역에서 여성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해진다. 또 남자들은 결혼 대가로 여자의 부모에게 재산이나 가축을 준다. 부모들은 딸을 고가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할례를 강요한다. 디리도 겨우 13살에 낙타 다섯 마리와 맞바꾸어 60대 노인의 신부가 되기 전날 사막을 내달려 도망쳤다.
와리스 디리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부모들은 아들에게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평등은 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사진=신보경PD]
고통의 굴레를 근절할 해결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디리는 ‘사막의 꽃’ 재단을 운영하며 여성 할례를 없애려 노력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해결책은 무엇보다 교육이다. “아프리카 소녀들은 어릴 때 결혼하는 탓에 제대로 교육받을 수 없어요. 남자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여자아이들은 하녀처럼 집안일만 해야 하죠. 그 아이들에겐 교육이 필요해요. 교육은 여성들이 살아갈 힘을 길러줍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게 하죠.” 그 덕분에 학교에 다니는 소녀들은 설령 글을 읽지 못해도 스마트폰에 이렇게 묻고 배운다. “누가 나를 때리거나, 상처를 주거나, 강간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디리가 처음으로 여성 할례 문제를 공론화한 뒤 UN(국제연합)은 2030년까지 여성 할례를 완전히 철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프리카 15개국은 여성 할례 금지를 법제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할례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오래된 믿음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음성적으로 관습을 이어가고 있다. 서구 사회로 건너간 난민, 이주민들이 딸에게 할례를 시키는 것이 새로운 국제 문제로 떠올랐다. 최근 영국에서는 딸을 시술시킨 우간다 여성에게 처음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세상을 확 바꿔놓지 않으면 이 잔혹하고 고통스럽고 슬픈 관습은 어디에서라도 계속될 겁니다.” 디리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성 할례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고 아동 학대인데도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시해왔죠. 아이들은 스스로 지킬 힘이 없어요.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싸우고 아이들 편에 서서 보호해야 합니다.”
이슬람 문화권과 심리적·지리적 거리가 먼 우리에게는 어쩌면 낯선 얘기다. 누군가는 얄팍한 문화상대주의에 따라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디리의 해답은 명쾌했다. “여성 학대는 세계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그걸 하나씩 없애나가야 합니다. 한국 여성들도 어떤 식으로든 차별을 받겠죠. 어머니는 늘 ‘다른 일에 신경 쓰기 전에 네 집 마당부터 쓸어라’라고 가르쳤어요. 우리는 각자가 겪고 있는 문제에 집중하면 됩니다.”
다만 중요한 건 확실히 소리 내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미 학대와 차별을 받고 있는데 또 뭐가 두려운가요? 전 크게 소리쳤어요. 지금 이 미친 짓을 그만둬! 나중에 말고, 지금 당장! 그리고 여성 학대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할 일을 하고 있죠.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힘을 합쳐 잘못된 것들을 다 바로잡아야죠.”
[출처: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