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닙 A. 유난 전 루터교세계연맹 의장 수상 연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겸허하게 선학평화상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라는 비전을 제시해주신 문선명 한학자 선학평화상의 설립자 양위분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를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홍일식위원장님을 중심으로 하는 선학평화상위원회와 선학평화상재단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가슴에 새겨 주신 사명을 믿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국인들의 회복력과 근면함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갖고 서울에 왔습니다. 또한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왕국을 발전시키고 있는 한국 교회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한국 그리스도 교회로서 단결이라는 선한 사명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저는 문재인 대통령께 각별한 존경을 표합니다. 이 반도를 통일하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을 매우 존경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한반도 사람들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하나의 한국으로서 하나의 국기와 하나의 지도력 아래 최종적으로 통일되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제게 종교 간 대화와 평화 증진이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저는 정의에 토대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정치적인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이는 성서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는 고통받는 인류를 섬기고, 신이 내린 존엄성을 그들에게 돌려주라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평화에 대해 말하는 자’가 아닌 ‘평화를 만드는 자’로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성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니 자기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중간에 막힌 담, 곧 원수 된 것을 헐어 내셨습니다.”(에베소서 2:14)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린도 후서 5:19) 저는 이 말씀과 같이 화해의 사역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있을 수 없고, 용서가 없으면 화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인생의 마지막 숨결까지 정의에 토대한 평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신년사에서 “평화는 희망의 여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직 희망을 가진 자만이 평화를 향한 여정을 견디어 내고 번영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성별, 인종,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소속에 상관없이 상대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서로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믿음과 새로운 세계질서의 기반이며, 진리, 정의, 사랑과 자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겠다는 비전은 모든 종교의 중심 메시지로써, 모든 종교적 사명에 필수적입니다. 제가 모든 종교 지도자들에게 정의에 토대한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오늘날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증오와 억압의 물결에 맞서 대담하게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종교는 세상의 양심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부정, 증오, 인종차별, 억압의 추악한 메시지를 외치는 사람들을 막아내고, 다양한 목소리를 평화의 교향곡으로 결합시켜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언제나 생명 보호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공동 안보에 대해 논의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공동 안녕(shared well-being)’에 대해 논의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동 안녕에 대한 헌신은 우리에게 파괴적 무기가 없는 안전한 세상을 위해 일하라고 요구합니다. 지금도 무기 비확산에 대한 회담이 열리고는 있지만, 사실 핵무기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국가들은 여전히 합법적으로 총기법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종교지도자들은 총과 폭탄 등의 무기들은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야 하며, 우리는 항상 생명 보호를 위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핵과 무기가 없는 도시와 국가를 위해 일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폭력 없는 학교, 마을, 사회를 가질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쯤 세계 지도자들에게 핵, 화학, 생물학 무기를 비롯하여 새롭게 부상하는 모든 살상 무기의 감축을 요구할 것입니까? 한국과 중동은 무기가 없을 때 훨씬 안전할 것입니다. 무기가 아닌 정의가 필요합니다. 나의 비전은 모든 국가가 살생 무기에 할당된 비용을 경제 발전, 평등, 성 정의, 종교의 자유에 투자토록 하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는 인간 가족입니다.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글로벌한 차원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가지며, 세계는 모든 국가와 민족의 공동 안녕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인류에 대한 약속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풍요로운 삶을 이룰 수 있을까요?
종교지도자들은 이 양극화된 세계에서 존엄하게 함께 살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공통의 가치를 홍보하며 광신주의, 원리주의, 극단주의에 맞서 싸움으로써, 이 목적을 향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조종하는 극단주의자들은 인류의 실존적 위협입니다. 극단주의는 종교의 노골적인 왜곡이며, 사랑의 반대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의 역할은 자신의 종교 내에서 어떤 종류의 극단주의와도 대담하고 예언적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와 타인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가치 있게 여기도록 지역사회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1서 4:20)
우리 모두의 공통된 요청은 사랑을 가르치고 절대로 분열이나 증오를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분열된 세계에서 강력한 절제력을 가진 사랑의 대리인이 되어 사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예언자 아모스가 말했듯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인도해 주는 가운데 우리는 언제나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공포는 모든 갈등, 폭력, 전쟁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매일 공포의 씨앗을 심고 키워 증오라는 수확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종교적 극단주의, 세속적 포퓰리즘, 인종차별주의가 우리 사회 전체에 퍼지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염병 앞에 무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어서서 이 공포증과 외국인혐오증에 대해 온 힘을 다해 저항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사랑, 자비, 이해, 신뢰를 대담하게 선언함으로써 이 질병으로부터 젊은이들과 사회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백인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이슬람혐오증, 기독교혐오증, 외국인혐오증, 애국주의, 그리고 다른 모든 종류의 병든 이념에 맞서 우리 사회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가득 찬 세상을 화합과 사랑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유엔 인권 헌장 제정 7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제정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많은 회원국들의 인권침해는 여전합니다. 우리는 인권 실현에 있어 하나의 공통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이른바 ‘우호국’에 대한 기준과 ‘적국’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합니다. 종교인, 그리고 양심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민족과 국가에 하나의 인권 기준을 적용하도록 대담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여기서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개념으로, 이는 우리를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평가받는 미래로 나아가게 이끌어줍니다.
사람들은 제가 예루살렘에서 온 아랍계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 묻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