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WEF가 선정한 세계 리스크 1위, '지경학적 대립'을 아시나요?
아이폰 공급망 사례와 석학들의 분석을 통해 경제가 무기화되는 시대적 의미를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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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가 총알이 되는 시대
경제 뉴스가 안보 뉴스로 바뀌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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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 보다가, 이런 순간 느끼신 적 없으셨나요?
전쟁 얘기라길래 탱크 사진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먼저 들려오는 단어가 이겁니다.
관세
제재
수출통제
공급망
…잠깐만요.
이거 원래 경제면 단어들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외교 성명에도 나오고, 안보 브리핑에도 나오고, 기업 CEO들의 인터뷰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경제 뉴스가 안보 뉴스로 변하는 순간을 보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2026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 ‘지경학적 대립(Geoeconomic confrontation)’을 단기 위험 1순위로 지목했습니다.
이는 ‘지경학적 위기’가 무역 갈등을 넘어선 ‘시대적 위기’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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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학적 대립이란?
경제 안보가 국가 전략의 중심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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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학(Geo-economics)’이란 말이 조금 낯설죠.
영어 뜻부터 풀어보면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 Geo(지리·국가·국경·세력권)
• Economics(경제·무역·자원·산업)
즉 Geo-economics 는 국가가 경제를 ‘지리적 힘의 게임’으로 쓰는 방식입니다. 돈이 돈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국경과 진영, 힘의 계산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등장하는 단어죠.
그리고 지경학적 대립(Geoeconomic confrontation)은 지경학이 충돌 모드로 들어간 상태를 의미합니다.
• 과거의 관세: 경기 조절을 위한 다이얼
• 현재의 관세: 상대의 진입을 막는 검문소이자 무기
검문소 앞에서 들리는 말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죠.
“너희는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돈을 내!”
“룰은 우리가 정해.”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 순간부터 경제는 더 이상 중립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되면 ‘경제’는 각국이 서로를 견제하는 힘의 언어가 됩니다.
그러니까 요즘 세계는 총을 겨누기 전에, 먼저 부품과 자원을 끊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가 ‘아이폰’입니다.
예전의 애플은 미국에서 설계하고 중국에서 조립하는 ‘최고의 효율’만을 쫓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경학적 대립이 시작되자 이 익숙한 공식이 깨졌습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유입을 막아서자, 중국은 공무원들의 아이폰 사용을 제한하며 맞불을 놓았죠.
결국 애플은 수십 년 간 공들인 중국 공급망의 일부를 떼어내 인도와 베트남으로 옮기는 거대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선택이 아닙니다.
내 편이 아니면 핵심 부품도, 시장도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경제 안보’의 공포가 아이폰의 국적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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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WEF는 2026년 ‘최상위 위험’으로 지경학적 대립을 꼽았을까?
공급망 파편화의 상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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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F는 올해 보고서에서 이렇게 딱 잘라 말했습니다.
“지경학적 대립은 올해 최상위 위험으로 떠올랐다”
왜 WEF는 2026년 최상위 위험으로 이를 꼽았을까요?
핵심은 상시화입니다.
과거엔 비상 조치였던 제재와 통제가 이제는 외교의 기본 문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역 정책이 상호 번영이 아닌 '상대적 힘'의 문제가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기화된 경제는 이제 비상 조치를 넘어 상시적인 전략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 World Economic Forum, Global Risks Report 2026
상시화가 무서운 이유는, 경제는 ‘멈추는 순간’ 바로 아프기 때문입니다.
지경학적 충돌은 어느 날 갑자기 숨을 못 쉬게 하는 방식으로 옵니다.
WEF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 항만 봉쇄
• 핵심 품목 수출 제한
• 계약 취소
• 자본 통제
‘경제가 무기’가 된다는 건 우리 일상에서 어떤 장면으로 나타날까요?
예전에는 거래가 이렇게 돌아갔습니다.
“가격이 맞으면 산다.”
“계약이 되면 보낸다.”
“돈을 내면 받는다.”
하지만 지경학적 위기의 시기에서는 점점 이렇게 바뀝니다.
“그 나라엔 못 판다.”
“그 기술은 허가가 필요하다.”
“그 부품은 멈춰야 한다.”
시장 논리가 ‘가격’에서 ‘허가’로 이동하는 순간, 경제는 곧 안보가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업의 생산기지,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와 에너지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산업 뉴스의 소재가 아닙니다.
국가가 서로를 견제하는 ‘전략 지도’ 위의 좌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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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번 터지는 경제 전쟁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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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F는 Global Trade Alert 자료를 인용해 ‘유해한(harmful) 신규 무역·산업정책 개입’이...
• 2017년 약 600건
• 2022~2024년엔 매년 3,000건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략 계산하면 하루에 8번 이상.
세계는 매일, 매일 서로에게 “너는 여기까지야” 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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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세 전쟁과 경제 안보
‘번영의 도구’가 ‘약화의 무기’로 굳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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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책은 원래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요?
성장을 만들고, 일자리를 늘리고,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경학적 대립이 통제되지 않으면, 경제는 더 이상 번영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를 약화시키는 무기로 굳어집니다.
‘불신’이 기본값이 되면 정책은 다음과 같이 설계됩니다:
1. 공급망 재편: '가장 싼 곳'이 아닌 '우리 편(진영)'으로 이동.
2. 비용 상승: 생산기지 이전 및 자원 확보 경쟁으로 인해 물가 상승.
3. 일상의 위기: 한 나라의 관세가 다른 나라 취약 계층의 식탁을 흔드는 결과 초래.
비용이 올라간다는 말은, 결국 누군가의 생활비가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취약한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그래서 지경학적 대립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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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무기화는 왜 이렇게 빠르게 현실이 되었을까?
‘가성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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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씁쓸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총을 쏘는 전쟁은 비쌉니다. 명분이 필요하고, 국제 여론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 조치는 다릅니다.
• 관세는 발표 한 줄이면 됩니다.
• 제재는 서류 한 장이면 됩니다.
• 수출통제는 허가 버튼 하나면 됩니다.
즉, 무력 충돌보다 낮은 비용으로, 더 즉각적인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쓰이게 됩니다. 그리고 더 자주 쓰이면… 더 익숙해집니다. 그게 상시화입니다.
지정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안테아 로버츠(Anthea Roberts) 교수는 그의 저서 《세계화의 여섯 가지 얼굴》에서 이러한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경제적 무기가 군사력보다 ‘깔끔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지도자들에게 유혹적인 첫 번째 선택지가 된다는 것이죠.
"경제적 무기는 군사력보다 '깔끔하고 저렴'합니다. 이는 지도자들에게 매우 유혹적인 첫 번째 선택지가 됩니다. 결국 '눈에는 눈'식의 보복이 새로운 표준(Normal)이 되는 사이클을 만들고, 외교적 타협의 공간은 좁아지게 됩니다.“
— Anthea Roberts & Nicolas Lamp, 《세계화의 여섯 가지 얼굴》
"진짜 문제는 ‘맞대응’이 자동으로 붙는다는 점입니다."
경제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번 시작되면 상대는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더 강한 조치를 정당화합니다.
그렇게 되면 협상의 공간이 점점 사라집니다.
결국 남는 것은 ‘상시적인 경제 전쟁 모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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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학적 대립은
‘평화’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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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평화는 더 이상 ‘총성이 없는 상태’만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내일을 예측할 수 있고, 가정을 꾸리고, 공부하고, 일하고, 계획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삶의 안정성이 곧 평화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국가와 기업: 핵심 품목을 ‘효율’만으로 설계하지 않고, 위기에 버틸 완충장치를 갖춰야 합니다.
• 국제사회: 경제 무기를 투명한 기준과 책임 아래 제한되는 도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 시민: ‘불안’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을 경계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쉽게 적으로 만들고, 대화를 끊어버리는 사회는 외부 충격이 올 때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결국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은 더 많은 무기를 쌓는 일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협력의 섬을 남기는 능력입니다.
WEF가 말했듯, 대화는 이제 장식이 아니라 전략적 역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 전략은, 결국 사람들이 내일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지경학적 대립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글
최연제 국장
참고문헌 및 출처 [글로벌 리스크 / 지경학적 대립] • World Economic Forum.The Global Risks Report 2026 (Digest) [무역 및 산업 정책 개입 데이터] [지경학적 이론 및 석학 인용] • Anthea Roberts & Nicolas Lamp.Six Faces of Globalization: Who Wins, Who Loses, and Why It Matters, 2021 — 경제적 무기의 효율성과 상시화를 분석한 저명 도서: Harvard University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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