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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이 낭자한
오징어 게임은
영화가 아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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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앞으로 달려가는데 뒤통수 쪽에서 총성이 울립니다. 붉은 피가 흩뿌려진 운동장에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언발란스하게도 배경음악으로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 우아하게 흘러나옵니다. 우아한 음악 때문인지 어쩐지 비극이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빚, 불평등, 죽음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돌풍을 불러일으킨 <오징어 게임>. 빚에 떠밀린 한국인들이 상금 456억원을 얻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생존게임은 이 시대의 불평등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지옥’이지만, 최고급 위스키를 마시며 게임을 즐기는 VIP들에게는 그저 흥미진진한 ‘호러쇼’에 불과합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9월 28일 자 기사에서 "오징어 게임,
전 세계를 사로잡은 지옥 같은 호러쇼"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는데요. 가디언은 "작품 속 살인 게임이 끔찍하다고 해도, 끝없는 빚에 시달려온 이들의 상황보다 얼마나 더 나쁘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현실은
<오징어 게임> 속 상황보다 더 참혹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불평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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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처럼
이어진
불평등의
고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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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평등의 의미부터 되짚어 볼까요. ‘평등’의 사전적
의미는 ‘차별이 없어 고르고 한결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등급이나
수준 등의 차이를 기준으로 나누거나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불평등은 ‘차별이 있어 고르지 아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누군가는 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누군가는 단지 쾌락을 위해 죽음을 즐깁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부와 명예,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게임 참가자들은 빚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하나뿐인 생명을 건 도박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입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불평등의 고리들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으로 인한 소외, 갈등, 빈곤은 범죄와 질병, 환경오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낳고, 그 피해는
취약계층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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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 세계
불평등 수준은
더욱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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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7일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학교 교수 등이 참여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소득, 부, 성별, 환경 등의 분야에서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는데요. 올해 전 세계 불평등
수준은 전 년에 비해 더욱 나빠졌습니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바로가기:
The World InequalityReport 2022 presents the most up-to-date & complete data on inequality worldwide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은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부의 몫이 역사상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한
해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019∼2021년 사이 상위 0.01%의 자산은 연평균 5%
이상 증가했는데요. 상위 0.1%는 전 세계 자산의 11.2%를 차지하고 있고,
평균 8170만유로(약 1085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의 사람들이 전 세계 소득의 52%(200유로, 약 1억2000만원)를 버는 동안, 가난한 하위 50%의 사람들은 전체
소득의 8.5%(2800유로, 약 373만원)를 가져가는 데 그쳤습니다. 무려 31배가 넘는 차이입니다.
보유 자산의 격차는 더 컸습니다. 상위 10%의 평균 자산은 55만900유로(약 7억3000만원)였고, 하위 50%의 자산은 평균 2900유로(약 386만원)로 190배 차이를 보였습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더 벌어졌기 때문에 옥스팜을 비롯한 세계 시민단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불평등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부자와 중산층은 전염병 극복을 위한 다양한 대응을 선택할 수 있지만, 빈곤층과 취약계층은 선택지 없이 코로나19를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는
“오늘날 전 세계 불평등 수준이 서구 제국주의가 정점을 찍었던 20세기 초와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 경제의 불평등은 여전하고,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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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나이키 축구공 꿰매면
2달러를 받는
파키스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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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왜 나타나는지에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개인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의견인데요. 국제사회는 ‘구조적 불평등’에 주목하여 이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Pakistan sweatshop producing Nike soccer balls, 1996 [30]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는 파키스탄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하루에 14 시간씩 바느질을 하고 2달러 정도를 받습니다. 반면, 나이키의 임원들은
이들의 저렴한 노동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나이키 임원들의 시급이나 일당이 노동자의 평생 노동과 동등한 가치로 평가된다면,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나이키 축구공뿐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커피와 초콜릿 산업, 채석장, 면화산업, 벽돌만들기 등 다양한 글로벌 산업에서 저렴한 저개발국가의 노동력을 이용한
불공정 무역이 만연합니다. 이런 불공정 무역은 글로벌 ‘구조적 불평등’을 공고화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경제 구조는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선진국의 경제 구조는 소프트웨어 산업이나 특허 의약품
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기반으로 하지만 가난한 국가일수록 노동집약적 산업에 의존하고 있어 성장이 힘듭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의 구조가 전 세계에서 악순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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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는
왜 가난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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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는 왜 가난해졌을까요? 우선 전쟁과 정치적 갈등을 겪은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빈곤할 확률이 높습니다. 전쟁은
국가의 통신, 시설 등을
파괴하고 노동력 부족을 야기하며, 지속할
경우 투자나 기업 활동은 둔화시킵니다. 또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정부가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투자 및 다양한 경제활동이 축소되고 국가는 경제난을 겪게 됩니다.
● 복지 부족을 야기하는 ‘부패’
부패와 범죄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국민 복지 및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습니다. 공공 기반
시설, 교육, 의료, 연금 등 복지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경제 발전의 토대가 취약하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합니다.
● 낮은 교육 수준
교육 수준이 낮은 나라들은 1차 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선진국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숙련된 노동력과 기술을 장착하고
, 자본 집약적인 산업을 장악하며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합니다.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술
발달은 물론 창의적 경제활동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 열악한 의료 인프라
선진국에서는 간단한 처치로 회복이 가능한 질병도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저개발국가에서는
생명 위협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매년 1억 명의 사람들이 의료비 때문에 극심한 빈곤에 빠지고, 매일 1만 명의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사망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담보되지 않으니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도모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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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알려주는
오징어 게임을 끝내는 법!
공존·나눔·돌봄·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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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선 21세기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유혈이 낭자하는 <오징어 게임>을 끝낼 수 있을까요?
어쩌면 보노보라는 원숭이가 그 해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저서 <보노보:
잊혀진 유인원>(1997)에는 보노보라는 침팬지가 등장합니다.
침팬지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침팬지가 수컷 중심의 수직적 서열 구조를 가지고 있고, 폭력을 수반하는 권력 투쟁을 하며, 다른 침팬지 집단과 잔혹한 전쟁을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그런데 프란스 드 발의 연구에 따르면 보노보는 전혀 다른 행태와 문화를 보입니다. 보노보는 암컷끼리의 연대가 매우 강하며,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또한 보노보는 세밀한 수직적 서열을 만들지 않으며, 무리 내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보살피고 끌어안는다고 합니다.
보노보 사회에는 남녀평등이 유지되고 있고,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으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공존·나눔·돌봄·협력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노보의 문화는 전 세계 영장류학계는 물론, 인류학계, 사회학계, 여성학계에 크나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과도 같은 냉혹한 리얼 월드에서도 보노보와 같은 공존과 협력의 노력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 옥스팜, ‘가난이 없는, 공정한
세상’를 만드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영국 옥스퍼드 학술위원회가 가난구제를 위해 설립한
국제구호개발기구로, 지난 80여 년 동안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가난 극복을 위한 다양한 도움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옥스팜은 저개발국의 식수 문제 해결, 식량 원조 같은 인도주의적 구호활동, 지역사회 개발과 교육 사업 전개는 물론 각국 정부, 다양한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정책 입안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특히 옥스팜은 지구촌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조세 회피
중단’, ‘모두를 위한 공정한 임금 지급’, ‘보건과 교육 서비스의 확충’ 등의 활동을 펴 나가고 있습니다.
● 억만장자들의 기부 서약(The Giving
Pledge)
부의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려면 가진자들의 동참이 필수입니다. 글로벌 억만장자들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데요. 기부 서약은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빌 게이츠 부부가 2010년 공동 설립한 자선단체로, 1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해야 가입 대상이 되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회원으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 등이 있으며, 부의 분배를 통해 세계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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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19
더 평등한
세상을 재건하는 5단계
by 옥스팜
by 옥스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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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지구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평하고 포용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특히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교육’, ‘보건’ 등 공공서비스와 복지 정책 체계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옥스팜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다음 5단계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정부는
여성들의 무급돌봄의 노동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정부는 부유한 백인 남성뿐만 아니라 가난한 흑인 여성을 위한 경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각국 정부는 여성들이
지금껏 해왔던 수백만 시간의 ‘무급돌봄’ 등 정말 중요한 것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2. 정부는
무료 공공서비스에 투자합니다.
정부는 부, 성별, 인종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무료 보건·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3. 포괄적인
일자리 보장을 해야 합니다.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권, 병가급여, 실업급여 등 훨씬 더 포괄적인 일자리 보장이 필요합니다.
4. 부자가
공정한 세금을 납부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의 가장 부유한 구성원의 진보적인 과세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입니다.
5. 기후 변화를
해결해야 합니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위협으로, 취약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국제사회는 화석 연료에 대한 모든 보조금을 없애고, 저탄소 산업에 투자하여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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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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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호러쇼’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이자 최종생존자인 ‘기훈’은 이런 말을 합니다. “원래 사람은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으니까 믿는 거지.”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기훈이가 일류대를 나온 엘리트 ‘상우’를 제끼고 최종생존자가 될 수 있었던 비법은, 위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 그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갖췄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와 함께한 2020-2021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빈부의 정도를 떠나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임을 절감했습니다. 나만, 우리나라 국민만 살면 된다는 ‘백신 이기주의’는 결국 더 막강한 변이 바이러스로 변신해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전 인류의 삶과
죽음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에 연대와 협력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나눠야 하는 것은 백신뿐이 아닙니다. 인류가 평화롭게 번성하기 위해서는 공존·나눔·돌봄·협력의 문화로 불평등을 줄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