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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을 해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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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화상 연설중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출처(UN)
"안전보장이사회가 보장해야 할 안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유엔을 폐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국제법의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라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So where is the security that the Security Council must guarantee?
“Are you ready for the dissolving of the UN? Do you think that the time of international law has passed? If your answer is no, you need to act now, act immediately.”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 중-
지난 2022년 4월 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 영상으로 참석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외침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소 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참혹한 ‘부차 학살’ 사진을 이날 화상으로 공개했습니다. 회의장은 숙연해졌고,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인은 분노했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UN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전문 바로가기
https://www.president.gov.ua/en/news/vistup-prezidenta-ukrayini-na-zasidanni-radi-bezpeki-oon-74121
세계평화, 라는 단어를 들을 때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국제기구가 있습니다. 바로 유엔입니다. 그런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엔의 존재감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유엔은 명백한 전쟁 앞에서도 왜 이렇게 무력한 걸까요?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엔의 역할을 정해 놓은 유엔헌장을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평화를 위해 만든 국제기구인데요, 유엔헌장 1조 1항에는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 △ 침략행위, 평화파괴행위 진압 △국제분쟁 조정·해결이라는 유엔의 설립 목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유엔헌장 제1조 국제연합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하고, 평화의 파괴로 이를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 |
유엔헌장 전문 바로가기
https://www.mofa.go.kr/www/brd/m_3998/view.do?seq=33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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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장이사회
유엔을 움직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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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1945년 10월 24일 2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현재 회원국은 193개로 글로벌 거버넌스를 총괄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전 세계 최대 국제기구입니다.
유엔의 주요기구로는 총회,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사무국, 국제사법재판소 등이 있습니다. 이중 힘의 축이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입니다.
이름 그대로 안전보장이사회는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유지해야 할 유엔의 가장 핵심적인 사명을 갖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안보리의 결정은 회원국에 법적인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유엔 사무국의 수장이며 유엔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유엔사무총장도 ‘안보리의 권고’에 의해 총회에서 결정되고, 나아가 평화유지를 위한 조사 · 조정 · 경제제재 · 외교단절에서부터 필요한 경우 군사력을 동원하는 무력개입도 안보리가 결정합니다.
유엔 주요기관에 대한 상세 자료 바로가기
https://www.un.org/en/model-united-nations/un-structure
안보리는 총 15개의 회원국으로 구성됩니다. 2차 대전 승전국인 중국(최초 대만에서 1970년에 중국으로 교체), 프랑스, 러시아(소련 해체 후 러시아가 승계), 영국, 미국 이렇게 5개국이 상임이사국이며, 나머지 10개국은 비상임이사국입니다.
비상임이사국은 2년마다 유엔에 대한 공헌과 지역 등을 고려하여 총회에서 선출되는데요, 중임은 가능하나 연임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상임이사국의 임기는 몇 년일까요? 없습니다. 네 임기가 없습니다. 영구적입니다.
유엔헌장에는 비상임이사국에 대한 임기만 명시돼 있고, 상임이사국의 임기는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영구적이라는 의미입니다. 5개의 상임이사국을 ‘P5(Permanent Five)’, 영구적 5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유엔헌장 제23조 1. 안전보장이사회는 15개 국제연합회원국으로 구성된다. 중화민국, 불란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영국 및 미합중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다. 총회는 먼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및 기구의 기타 목적에 대한 국제연합회원국의 공헌과 또한 공평한 지리적 배분을 특별히 고려하여 그외 10개의 국제연합회원국을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한다. 제27조 3. 그외 모든 사항에 관한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은 상임이사국의 동의 투표를 포함한 9개 이사국의 찬성투표로써 한다. |
▲안보리의 구성과 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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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안보리 상임이사국 힘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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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의 의사결정은 '상임이사국의 찬성 투표를 포함한' 9개 이사국의 찬성투표로 정해집니다. 이 규정에는 무시무시한 힘의 불균형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안보리 15개국 중 14개국이 찬성하더라도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국가라도 반대표를 던지면 안건이 부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거부권(veto)이라고 합니다. 거부권은 상임이사국의 가장 큰 힘의 원천입니다. 안보리에 쏟아지는 비판은 이 거부권에 집중됩니다.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 행사가 ‘공동체 평화’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행사된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1946년 이후 유엔안보리에선 총 295번의 거부권이 행사됐는데요, 러시아(구 소련 포함)는 143회, 미국은 86회, 영국 30회, 프랑스와 중국은 각 18회입니다.
러시아가 단연 1등입니다. 러시아는 친 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시리아 제재와 관련된 안건에만 총 15번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세계평화와는 거리가 먼 자국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한 권한 남용이었습니다.
거부권 2위 사용국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관련한 안건에서 번번이 이스라엘 편에 서서 거부권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역시 세계 평화와는 거리가 먼 결정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중국의 거부권 사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역대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 목록 바로가기
https://research.un.org/en/docs/sc/quick
(UN 자료 링크)
◆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 사례
◇ 2012년 2월 시리아 정부의 민간인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5천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하자 안보리는 유혈진압중지와 평화적 정권이양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시리아 정부와 이해관계가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통과가 무산됐습니다.
◇ 201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도널드트럼프 당시 미국대통령의 선언을 무효로 하는 결의안이 안보리 15개 이사국중 14개국이 찬성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부결됐습니다.
◇ 2018년 4월 친 러시아 측인 시리아 정부가 반군지역에 화학무기를 썼다는 의혹과 관련해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전면 조사하자는 안보리 결의안은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 2021년 5월 미얀마에 군부가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이에 안보리는 미얀마사태에 대한 유엔의 개입여부를 놓고 회의를 열었지만 미얀마 군부를 지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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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를
개혁하라!
해체하라!!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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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개혁할 힘이 없습니다. 당장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도 없습니다.
하지만 안보리가 아닌 전체로서의 유엔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2022년 4월 28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방문 중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유엔사무총장
(사진왼쪽, 출처 유엔)
‘도대체 유엔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취재진은 힐난을 쏟아부었고,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자신은 안보리를 개혁할 권한이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유엔 수장에게도 P5의 거부권은 ‘성역’이며, 그 앞에서 무기력함을 자인한 것입니다.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총회도, 안보리의 막강한 힘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전 세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P5가 자신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이익을 챙기느라 누군가를 짓밟고 있는 유엔의 현실, 안보리 개혁론, 안보리 해체론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안보리에 대한 비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유엔은 우크라이나 침공 다음날인 2월 25일 안보리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과 병력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안보리 긴급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나,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습니다.
2월 2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관련 안건을
다루는 안보리에서 발언하는 러시아대표
(출처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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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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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은 영영 없을까요?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바로 상임이사국의 임기와 거부권을 명시한 유엔헌장을 ‘개정’하면 되는데요, 유엔헌장 108조에 헌장 ‘개정’에 대한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대목입니다. 유엔헌장을 개정하려면, 이 역시 안보리 상임이사국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유엔 창설을 이끌었던 주역이 상임이사국들인데, 설계부터 자신들의 권한과 지위에 말뚝을 박아 놓은 셈입니다.
유엔헌장 제108조 이 헌장의 개정은 총회 구성국의 3분의 2의 투표에 의하여 채택되고,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국제연합회원국의 3분의 2에 의하여 각자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비준되었을 때, 모든 국제연합회원국에 대하여 발효한다. |
사실 그간 안보리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엔 출범 당시 6개였던 비상임이사국의 숫자가 1965년에 10개로 늘어난 것도 그런 개혁 중 하나입니다.
상임이사국 확대를 원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G4로 불리는 독일, 브라질, 인도, 일본입니다. 이들 G4는 자신들 네 나라와 아프리카 두 나라를 더한 6개국을 상임이사국으로 추가하길 원하고 또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상임이사국도 4개국을 더 늘리고 새로운 상임이사국은 15년간 거부권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제안을 했던 바 있습니다.
G4와 경쟁관계에 있는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이탈리아, 파키스탄 등이 주축이 된 ‘합의를 위한 단결’(Uniting for Consensus) 그룹은 상임이사국 확대에 반대하며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의 추가 증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최근 유엔 총회에서는 안보리의 힘을 제한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6일에는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남용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되었습니다.
상임이사국이 거부권 행사 시, 10일 이내에 총회를 열어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 대해 토론하자는 것입니다. 공론화를 통해 거부권 행사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실현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계는, 거부권을 행사한 국가가 토론에서 설명할 의무를 거부하더라도 구속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제전략문제를 다루는 브루킹스 연구소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안보리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인가’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평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비효율적인’ 안보리가 사이버공격, 바이오테러, 기후변화 같은 새로운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다자체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논평했습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상임이사국에 몰려있는 힘의 불균형을 해결할 대안으로 회원국의 3분의 2이상과 인구비율 3분의 2이상 국가의 찬성으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무효화할 수 있게 유엔헌장을 개정할 것은 제안했습니다.
https://www.brookings.edu/opinions/will-ukraines-tragedy-spur-un-security-council-re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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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유토피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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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앞에 무력한 유엔의 한계를 되새김질 하자니, 세계 평화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절망감마저 듭니다.
어찌할 수 없는 강대국의 ‘특권’ 앞에 무력한 ‘평화’, 평화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토피아인 것일까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유엔 안보리 연설로 이번 글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국제 안보 기구를 창설하면서 세운 목표가 아직 달성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개혁 없이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보 도전에 예방적으로 대응하여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효과적인 유엔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침략을 방지하고 침략자를 평화롭게 만듭니다. 평화의 원칙을 어기면 응징할 수 있는 결단력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예외, 특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합니다.
국제 관계의 모든 참가자, 경제적 강점, 지리적 영역 및 개인의 야망에 관계없이 평화의 힘이 지배해야 합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 중-